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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도 작가/글로 쓰는 가족앨범

첫째 아이가 군대에 갔습니다

by Ella's Raum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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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군대에 갔습니다.
대학교 2학년 2학기를 종강한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서 훈련소로 갔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 복학하는 학기를 맞추기위해 매우 빠듯하게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터라 12월의 눈이 많이 내리는 주말에 온 가족이 기숙사의 짐을 옮기고,
아이도 데리러 가기 위해 이른 새벽 길을 나섰습니다. 토요일,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서 한참을 달리다보니
어느덧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날따라 눈을 또 왜 그리도 많이 내리던지요.
다행히 서울에 거의 들어설때 쯤에는 눈이 그쳐서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짐을 차로 옮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첫째는 엄마, 아빠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기숙사에 있던 짐을 모조리 정리하여 입구에서 기다리도 있었습니다.
추우니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이제 그 좁은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사진과 영상으로 보았지만 정말 좁긴 좁더군요. 학교에 기숙사가 여러동이 있는데,

제일 오래된 기숙사에 2년동안 살아준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많은 친구들은 학교앞에 원룸을 얻어서 자취한다는데 우리집 형편을 빤히 아는 첫째는
냉장고도 없고, 바람은 숭숭 들어오고, 지네가 들어와서 손과 발이 물리기도 하면서 2년을 지내주었습니다.

 

모든 부모들에게 그러하듯 저역시 첫째 아이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더 많습니다.
우리 부부가 정말, 제일 힘든 시기에 첫째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아이에게 장난감 하나도,

좋은 옷은 커녕 유아복 매장안에 옷은 언감생신 엄두도 못 내고

매장밖에 있는 할인상품이 있는 매대에서 5,000원짜리 옷들만 겨우 사 입히며 키웠거든요. 

아이의 분유도 제일 저렴한 것으로 구입해서 먹였습니다.

 

어려운 것은 경제적인 여건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사정이 아닌, 다른 형제의 사정으로 많지도 않았던 신혼집 보증금을 빼서 주고,

시골의 시부모님 댁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시아버님은 알콜중독 수준으로

매일매일 술로 사는 분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족들에게 온갖 불만과 막말을 내뱉으며 집안을 공포분위기로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 아버님을 피해 아이를 안고 집밖을 서성이던 날도 부지기수였고,,,,

암튼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첫째아이의 존재로 인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시아버님은 우리를 어렵게 했지만, 친정에서 간간이 아이를 돌보아주셨고,

먹을거리와 아이의 옷이나 장난감 들을 사주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많은 어른들께 예쁨을 받고 밝게 자랐습니다.

첫째 아이는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주는 햇빛같은 존재였고, 

그 어려운 시기에도 무럭무럭 자라주었습니다.

마트에 장보러 가도 한 번도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를 써 본적도 없었고,

그런 아이의 모습에 제 맘은 더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무탈하게 학교도 잘 다녔주었고, 공부도 스스로 하는,

자신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주었습니다.

지난 여름 가족여행으로 유럽여행을 갔을 때도 숙소위치를 안내하고,

통역을 해주어서 우리가 편안하게 잘 지내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아들이 군대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에궁, 힘들겠네.'하는 정도의 생각만 했는데,
막상 첫째가 군대에 가게 되니 여러가지 생각이 참 많아졌습니다.
혹자는 '남들 다 가는 군대, 뭘 그리 애닳아하느냐, 18개월 금방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아가처럼 보이는 아이가 외부와 단절되어 1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무조건적인 규칙과 명령, 규율이 존재하는 곳에서 지내게 될 생활,
한창 공부하느라, 취업준비하느라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에게
국가가 무조건적으로 의무를 지워준 군복무.

강제적 의무인 군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학업, 직장을 접어두고 입대하는

이 땅의 젊은, 아니 어린 아들들, 그리고, 아들들의 무사안위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가족들이 진정한 애국자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들입니다.

 

더불어 이렇게 어린 아들들이 밤에 잠못자고 불침번 서고,

우리가 모르는 시간에 훈련과 수많은 어려움들을 견디는 댓가로

편안하게 잠들고 깨는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게 됨에

말로 다 못할 감사함을 가지게 됩니다. 

이 땅의 모든 아들들, 쉽지 않은 시간을 잘 견디고, 더 건강하고 강인하게 성장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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